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랑할 때와 죽을 때 (문단 편집) == 일화 == 이 책은 영어, 네덜란드어, 스웨덴어판이 먼저 출간되고 이후 키펜호이머&비치 출판사에서 독일어로 출간했는데, 민음사판 역자에 따르면 독일어판에서는 독일인들이 불쾌하게 느낄 수 있을만한 원본의 상당 내용[* 슈타인브레너 등 독일의 전쟁범죄에 관한 내용이라든가 마지막 장면의 포로에 대한 내용 등이 수정되었고 10페이지 가량의 분량은 아예 삭제되었다고 한다.]이 수정되어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어판 역자는 이에 대해 '러시아와의 전쟁은 국가 대 국가의 정상적인 전쟁일 뿐이라는 논지이며, 나치 체제를 등장시킨 독일 시민사회의 책임을 은폐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작가 자신도 이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출판을 하게 해주는 조건으로 동의하였다고 하며, 출판사는 이후 1989년에야 삭제를 롤백한 원본판을 독일에 출판한다. 참고로 이 소설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상황과 독일인들의 심리, 독일군의 병영문화를 엿볼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 이유는 레마르크는 사실 1932년에 스위스로 망명, 1939년에는 미국으로 망명했는지라 사실 독일 제 3제국의 정치 상황을 자세히 몰랐다. 소설을 읽어보면 좀 어색한 묘사가 종종 등장하는데 병사들과 민간인들조차 강제 수용소의 위치,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가스실의 존재 유무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으로 등장한다. 당시 독일에서도 수용소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에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유대인들이 기차에 태워져서 끌려가고 그 사람들이 다신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일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수용소라는 곳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지 짐작하기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거대한 작업에 동원된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막는 것도 불가능 하기에 수용소에서 소위 '운터멘쉬'에 대한 학살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은 이미 독일 패망 이전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한 사례로 수용소 굴뚝으로 하도 연기를 피워대서 냄새가 나자(당연히 시체를 태우는 연기다) 동네 사람들이 와서 시체 태우는 냄새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항의 한 경우도 있었다. 학살의 방식이나 경과까지 정확히는 몰랐을지언정 학살이 벌어지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저렇게 속속들이 아는 모습은 부자연스럽다. 돌격대의 경우 장검의 밤 이후엔 친위대의 하부 조직 정도로 격하되었고 지역의 치안 유지 정도의 임무를 맡다가 대전 말엔 국민돌격대와 같이 소집되어 전선에 투입되었다. 친위대 출신인 슈타인브레너가 국방군 중대에 있는데 오히려 인력부족에 시달리던 친위대가 해군이나 공군 육군으로부터 인력지원을 받았지 친위대 병사가 국방군에 편입되는 일은 없었다. 게다가 중대장부터 선임하사까지 일개 사병인 슈타인브레너가 단지 친위대라는 이유만으로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데 이것도 현실을 생각하면 넌센스. 오히려 친위대도 육군 장군의 지휘 하에 편입되거나 명령에 따를 때가 많고 두 조직간의 균형이 서로 비등했기에 이런 묘사는 말이 안된다. 당시 독일에 있지 않았던 작가가 무장친위대가 하는 역할을 정확히 모르고, [[정치장교]] 비슷한 존재로 생각했을 공산이 있어 보인다. 생날것의 나치독일군들의 심리에 대해 알고 싶다면 육군은 기 사예르 상병의 회고록 [[잊혀진 병사]], 무장친위대의 경우 [[헤르베르트 브루네거]] SS중사의 <폭풍 속의 씨앗>을 추천한다. [[분류:독일 소설]][[분류:미국 영화]][[분류:전쟁 영화]][[분류:전쟁 소설]][[분류:1958년 영화]][[분류:퍼블릭 도메인/영화]]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